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자는 세상을 구하는 것. -탈무드- 쉰들러 리스트에서
유태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돈을 들여 유태인들을 사들인 쉰들러. 그 쉰들러가 떠나는 밤 공장의 사람들은 그에게 저 글귀가 있는 반지를 선물한다. 쉰들러는 더 살릴 수 있었을 거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 차면 열사람을 살리고 이 핀으로 두사람을 살렸을 거라고 오열한다. 오열하는 그를 유태인들은 다가가 감싸안는다.
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것 혹은 하나의 생명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것. 그것은 도대체 얼마나 큰 사랑이며 자비일까. 시인의 말처럼 난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을런지... 오늘 한 가슴 뜨거운 분의 글을 보며 자기 살기 급급한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2009년 7월 31일 금요일
내 멋대로 도덕경 No.4
12장
다섯 가지 색깔로 사람의 눈이 멀게 되고,
다섯 가지 음으로 사람의 귀가 멀게 되고,
다섯 가지 맛으로 사람의 입맛이 고약해집니다.
말달리기,사냥하기로 사람의 마음이 광분하고,
얻기 어려운 재물로 사람의 행동이 그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배(腹)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습니다.
후자는 뒤로하고 전자를 취합니다.
---------------------------------------------------------
요즘 한창 연예인 대마초 사건이며 , 클럽의 퇴폐 향락 문화로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모든 쾌락에는 번뇌가 따라다니기 마련인데 더 큰 쾌락을 자꾸 찾으니 그 번뇌와 고통도 그만큼 커진다. 이 장에서는 그런 쾌락에 대한 경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람을 광분하게 만드는 쾌락들, 시대적으로 보면 까마득히 떨어져있는 노자의 시대때도 그런 쾌락은 존재했었나보다. 그런 쾌락에 대해 도덕경에서는 배(腹 배 복)를 위하라고 조언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눈을 위한 말초적인 쾌락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향하라는 말이다. 점점 도를 지나치는 쾌락이 만연하는 때라서 그런지 이 장의 말씀이 더 깊이 다가온다.
다섯 가지 색깔로 사람의 눈이 멀게 되고,
다섯 가지 음으로 사람의 귀가 멀게 되고,
다섯 가지 맛으로 사람의 입맛이 고약해집니다.
말달리기,사냥하기로 사람의 마음이 광분하고,
얻기 어려운 재물로 사람의 행동이 그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배(腹)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습니다.
후자는 뒤로하고 전자를 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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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연예인 대마초 사건이며 , 클럽의 퇴폐 향락 문화로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모든 쾌락에는 번뇌가 따라다니기 마련인데 더 큰 쾌락을 자꾸 찾으니 그 번뇌와 고통도 그만큼 커진다. 이 장에서는 그런 쾌락에 대한 경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람을 광분하게 만드는 쾌락들, 시대적으로 보면 까마득히 떨어져있는 노자의 시대때도 그런 쾌락은 존재했었나보다. 그런 쾌락에 대해 도덕경에서는 배(腹 배 복)를 위하라고 조언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눈을 위한 말초적인 쾌락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향하라는 말이다. 점점 도를 지나치는 쾌락이 만연하는 때라서 그런지 이 장의 말씀이 더 깊이 다가온다.
2009년 7월 8일 수요일
하늘색 꿈 - 고 장자연씨를 추모하며-
공부하다 갑자기 머리속에 떠올라서 5시부터 대략적인 콘티를 생각해보고 여기저기서 이미지를 무단 다운. 노래에 붙여서 10시에 완성. 출처를 처음엔 쓰다가 싸이트가 너무 많아 도저히 다 달수가 없었다. 그러나 두번째 나오는 그림 영상은 출처를 밝혀둔다. 지금 올려놓고 허락 메일을 보낸 까닭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오늘 하늘색꿈만 수십번 돌연변이(드렁큰 타이거) We will rock you(퀸)도 수십번 들었던 것같다.
그럼 자그만 추모 영상을 올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의 빕니다.
두번째 영상 출처
http://blog.naver.com/tignk12?Redirect=Log&logNo=130044016402
불안의 정체
요 며칠간 알 수 없는 불안감 속에 어쩔 줄 몰랐다. 어쩔 줄 몰랐다고 해도 무슨 특이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이어갔을 뿐이다. 하지만 몸에 흐르는 이 불안 속에서 무엇하나 몰입하기도 힘들었고, 모든 일에 확신이 사라져갔다.
그러던 중 다시금 계획이나 짜봐야겠다 싶어 공책을 들고 앞으로의 계획을 짰다. 한 6개월 정도로 잡아놓고 돈과 걸리는 시간등에 대해 이리저리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그러다 어느 한 곳에 이르러서 잠시 잊었던 그 불안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 직업과 삶의 방향에 대한 것이었다.
왜 나는 이 대목에서 상당한 불안감과 마주했을까 궁금했다. 알바를 구하고 학자금 이자 얼마내고 하는 한달의 지출을 정하고 할 때는 전혀 느끼지 않았던 이 불안감. 그 불안감을 곰곰히 생각해보던 중에 나는 이 불안이 내 얼마나 황당한 바램속에 있었던 것인가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어보자, 알바를 구하고 한달 얼마 쓰겠다는 것은 내 계획의 영역이다. 그조차도 알고보면 많은 불확실성에 휩쌓여있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 불확실성은 내가 감당할 만 한 수준이다. 그러나 내 삶의 방향과 내 꿈에 이르러서는 그 불확실성이 상상이상으로 불어난다. 결국 내 불안이란 그 불확실성을 감당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었는데 이게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소리란 말인가.
이 인정투쟁의 장인 세상속에서 과연 내가 가치의 투쟁에서 이길지 질지 어떻게 알수 있을까. 내 인생의 방향을 내가 어떻게 지레짐작할 수 있단 말인가. 또 그 과정조차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그 결과를 못본다고 불안해한다는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나는 황당하게도 내 삶의 모든 일들을 보지 못해서 불안해하고 있었다. 사실 그 모습들을 다 본다면 여태까지 겪은 불안의 곱절만큼 권태에 휩쌓일지 모르고 난 도저히 살 수 없을지 모른다.
난 뽑기(방향)를 정하고 뽑기에 동전(노력)을 넣을 수는 있다. 그러나 뽑기에서 뭐가 나올지는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신이란 변덕쟁이의 영역이다. 난 동전이나 열심히 넣어봐야겠다. 무엇이 나올까 걱정하기 보다는 무엇이 나올까 설레이는게 좋을지 모르겠다.
잡담: 저와 같은 불안에 떠는 분들을 위해 한 영화감독의 좌우명(샘터에서 봤던가 가물)을 올려놓습니다.
아님말구
2009년 7월 4일 토요일
손에 손잡고(Hand in hand) - 코리아나
냉전, 산발적인 전쟁들, 무차별적 성장에 따른 지구의 황폐화.
그 때 나오는 하나의 외침,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연대와 화해, 지속가능한 성장. 어쩌면 모든 답을 제시한지 모른 노래.
진정 저런 축제와 같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2009년 7월 2일 목요일
불꽃남자 동욱이형을 기억하며

동욱이형을 처음 봤던 때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 같은 소대도 아니었고, 워낙 찌글찌글(계급이 낮다는 표현)할 때라서 옆 소대 후임따위는 신경쓸 겨를도 없었으니까. 그때는 나 하나 건사하는데 정신이 없는 때였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면 먼저 필승하길래 아 내 후임이구나 하고 알아차린 정도, 같은 소대가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이 될 때까지 관심도 안 가졌었다.
하지만 복도에서 필승을 외치는 동욱이형은 묘한 분위기의 사람이었다. 모든 걸 받아줄 것 같은 푸근하고 선량한 눈, 약간 이국적인 얼굴 , 큰 키 목소리는 그다지 힘이 없었지만 부드러웠다. 왜 그런가 하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는데 고참들이 중대 본부 애들 이야기를 듣고 와서 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군대를 1학년 혹은 2학년 중간에 가지만 나는 학보사 활동때문에 23살에야 군대를 입대했다. 선임중에도 22살짜리 애들이 즐비했고 병장들이 나랑 나이가 비슷하곤 했다. 그런데 동욱이형은 나보다 두 살 많은 25살이었다. 왜 그렇게 나이가 많은 가 했더니 대학을 두번 들어가서 라고 했다.
동욱이형은 원래 서울대 공대에 다니고 있었다 . 그러다가 신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광주에 있는 신학대학으로 다시 입학하고 학년을 다닌 후 군대에 온 것이었다.
최전방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소위 SKY 대학에 나온 아이들은 일반 보병중대에 떨어지지 않고 본부중대 보직을 받는다. 우리 중대에서 가장 학벌이 좋았던 아이는 한양대 다니는 내 동기였다. 생각해보면 그 형이 공대를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이 빡센 보병중대에 올 일은 애시당초 없었다.
후에 내 머리가 만들어낸 이미지인지 모르지만 가물가물하게 훈련때 형의 모습을 본 적도 있는 것같다. 정말 가파른 대성산 길들, 철원의 살인적인 더위. 안경 속 땀방울과 함께 헉헉 거렸던 걸로 기억한다. 뭐 훈련 때 뿐일까. 같은 중대니 진지공사며 이런저런 때도 많이 스쳤을 것이다. 그러다가 좀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은 지뢰에 철심까는 작업때였다.
그때 무슨 협정이 바뀌었다고 지뢰도 지뢰탐지기에 걸리게 철심을 하나씩 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세계에서 지뢰때문에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상당하다고 한다. 탄약 반장이 데리고 다니는 작업은 정말 모하니면 도였는데 정말 땡보(무진장 편하다는 표현)일 때도 있는가 하면 무진장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때는 시간은 좀 걸렸지만 설렁 설렁하는 작업이라 동욱이형이랑 대화할 시간이 좀 있었다.
사실 그때 거창한 이야기 없이 그냥 종교에 대해 이리저리 이야기했던 것같다. (왜 사람의 기억은 대부분이 뿌연 이미지일까 답답하다.) 아는 사람이 토마스 아퀴나스 밖에 없어서 그런 것도 공부하고 그러냐고 물으니 자기 학년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군대에서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났지만 , 동욱이형도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뭔가 신념에 꽉찬 사람. 그러면서 부드러운 사람이랄까?
그런 시작과 중간을 보내고 근무지 변경으로 소대가 갈린 뒤 한참 못 보다가 다시 만난 것은 GOP에서 였다. 1소대와 2소대는 바로 옆에 건물을 쓰는 까닭에 밥 먹을 때도 보고 얼굴 볼 일이 많았다. 동욱이형과의 시작과 중간은 가물가물하지만 끝은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후의 일때문에 형이 나에게 큰 의미가 되서인지는 모른다.
GOP는 두 소대가 붙어있지만 쓰레기 처리하는 곳은 한 곳이다. 그런데 우리 소대에 비해서 2소대 아이들이 분리수거를 안한다고 불만이 컸다. 그것 때문에 이야기를 하러 갔었는데 그 때 동욱이형이 있었다. 형에게 소대 쓰레기좀 잘 처리하라고 볼멘소리를 했었는데 후임들 앞이라 좀 그랬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제부터 잘 하겠다고 했다. (당연한 것같지만 원래 후임들 많은 곳에서 대놓고 혼내면 안된다. 자존심을 뭉개는 행위다.) 형은 화를 내는 경우가 없었다. 그리고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깨끗이 인정했다. 그리고 그 후 형을 보지 못했다.
군대에서 대부분 작업을 할 때 휴식시간이 되면 그냥 땅바닥에 주저앉곤 한다. 하지만 그 곳에 쥐똥이나 온갖 더러운 것이 많다. 특히 쥐똥같은 것이 있으면 유행성 출혈열이 걸릴 수 있는데 치사율이 40프로가 넘는다.
상황실에서 (본부 소대라 GOP에서는 상황실에서 근무한다.) 휴가를 나간 동욱이형이 많이 아프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많이 아프다는게 얼마나 아픈지 몰랐다. 뚱보 중대장의 굳은 표정에서 좀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을 뿐. 하지만 이틀날 누구도 직접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조용히 형의 소식은 전 중대에 퍼졌다. 항상 야간근무 잡담으로 하루 하루를 때우던 그 때, 그 날은 아이들 다 말이 없었다. 나는 그냥 공책을 피고 기억안 날 말들을 끄적이며 아침을 맞았다.
가까이 생활하던 사람의 죽음을 별로 본 적이 없던 나는 혼란스러웠다, 신은 무엇일까? 신의 뜻은 무엇일까? 신은 동욱이형이 믿던 성경에서 처럼 도덕적인 존재일까? 과연 인간의 도덕과 신의 도덕은 상관이 있는 것일까? 동욱이형을 데려가는 것. 그것은 단지 불편부당한 것인가? 신은 정말 미울정도로 철저히 가치중립적인 것은 아닐까? 왜 대대 연대 사단에서 가장 순수한 영혼을 데려갈까? 그것이 신의 뜻일까?
형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결과로 봐야는 걸까? 과정으로 봐야는 걸까? 신부는 슬퍼하며 동욱이형은 천국에서 영생의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할까? 형이 서울대 공대생으로 남아있었다면 과연 죽었을까? 형은 행복했을까? 형이 사라진 지금 형의 행복을 말 할 수 있는 걸까? 불교신자이지만 좋은 업만 쌓아온 형이 윤회의 법칙속에 가야하는 이유는 또 뭘까.
그 무엇도 답 할 수 없었다.
형의 죽음도 어느새 흩어져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갔고 얼마 후 나는 제대했다. 생각해보면 형도 군생활 2개월 정도 남은 무렵의 일이었다.
이 밤 밑도 끝도 없이 형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때의 질문도 떠올랐다. 어차피 다 답은 못했지만...
갑자기 쥐가 생각나서 그런지 누구 생일날이어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흠.
이 순간 말할 수 있는 건 형은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 그정도? 흠.
어! 쩄! 든!
스물 여섯의 김동욱은 불꽃남자였다!
형을 잊지 않겠어!
내 멋대로 도덕경 No.3
11장
서른 개 바퀴살이 한 군데로 모여 바퀴통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無)때문에
수레의 쓸모가 생겨납니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그릇의 쓸모가 생겨납니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방의 쓸모가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있음은 이로움을 위한 것이지만
없음은 쓸모가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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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의바퀴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중간 중간의 비어있음 때문이다. 그릇을 쓸 수 있는 것은 가운데가 비어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물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사람도 뭔가 비어있지 않고는 채울 수도 없고 쓸모를 잘 알 수도 없다.
하지만 작금의 세태는 그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학생은 끊임없이 점수, 지식 ,스펙을 채워내야하지만 정작 그 비어있음에서의 성찰이 없는 결과 , 그들은 그들의 쓸모를 잘 모른다. 멋도 모르고 과를 고르고 대부분 멋도 모르고 취직을 한 끝에 나이 서른되서도 자기가 왜 이걸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사원들은 누구 말마따라 방전없이 충전만을 하며 동물의 왕국 속에 살아가고 삶을 그렇게 채우면서 ‘살아내야’하지만 그렇게 채우고 채워도 그들은 스스로 만족하기 힘들다. 그들이 평생 쫓는 것은 돈과 성취뿐이다. 이건 나이가 들어도 바뀌지 않는데 그 끝없는 채움 후에 삶을 관조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사회는 새로운 시작을 요구한다. 마지막까지도 그들에게 이로움만을 위해 살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살게 하는 , 진정 쓸모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만해도 나를 살게하는 것은 하루 꽉 차있는(요즘들어 좀 게을리했지만;;;;) 영어, 일본어 공부가 아니다. 그 사이의 독서, 사람들과의 수다와 웃음, 그리고 멍하니 생각하는 시간들이다. 그 시간들속에서 자신이 쓸모있게 살 수 있는 방향을 생각할 수 있고 이로움을 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며 창조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없음은 쓸모가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모두들 없음과 비어있음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정작 자신의 쓸모를 알고 싶다면...................
휴식이 없음은 노예의 특성이다. 동시에 그들을 규정짓는 말이기도 하다.
-책 희망의 인문학 중 재인용. 누구말인지도 저 글이 맞는지도 잘 기억이;;;; -
2009년 7월 1일 수요일
내 멋대로 도덕경 No.2



제 49장
성인에겐 고정된 마음이 없습니다.
백성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습니다.
선한 사람에게 나도 선으로 대하지만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선으로 대합니다.
그리하여 선이 이루어집니다.
신의 있는 사람에게 나도 신의로 대하지만
신의 없는 사람에게도 신의로 대합니다.
그리하여 신의가 이루어집니다.
성인은 세상에 임할 때 모든 것을 포용하고
그의 마음에는 일체의 분별심이 없습니다.
[사람은 모두 이목을 집중하여 분별심을 일으키는데]
성인은 그들을 모두 아이처럼 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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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성철스님의 말이 나올때만 해도 김성모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고정된 마음을 버리고 미발의 상태로 돌아가는 도를 이야기 한것이었다니..(꿈보다 해몽일까)
내멋대로 도덕경 no. 1
내 멋대로 도덕경 no.1
제 63장
함이 없는 함을 실천하고
일함이 없는 일을 실행하고,
맛없는 맛을 맛보십시오.
큰 것을 작은 것으로 여기고
많은 것을 적은 것으로 생각하십시오.
원한을 덕으로 갚으십시오.
어려운 일을 하려면 그것이 쉬울 때 해야 하고,
큰 일을 하려면 그것이 작을 때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세상에서 제일 큰 일도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끝에 가서 큰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큰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무릇 가볍게 수락하는 사람은 믿음성이 없는 법이고,
너무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어려운 일을 맞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이라도 일을 어려운 것으로 여기는 법입니다.
그러기때문에 끝에 가서 어려운 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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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을 작게 여기고 큰 것을 크게 여기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당연한 일이다. 하루의 작은 일들은 작게 생각되고 뭔가 나중에 자신이 이룰 일들은 크게 보인다. 하지만 하루의 작은 순간순간들이 모여 그 큰일을 이루는 것은 잘 모른다.
‘큰 것을 작은 것으로 여기고 많은 것을 적은 것으로 생각하십시오.’ 라는 것은 그래서 의미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 이 큰 순간이 만들어낸 작은 결과과 자신이 이루는 일이 아닐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라는 구절도 백번 옳은 말임에 틀림없다. 이 구절에서 나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롤모델로 생각할 때를 떠올렸는데, 만약 박진영씨를 롤모델로 생각한다고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명성과 파워를 보며 그 어려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성공의 모델로 나오는 사람들은 이미 완제품처럼 나와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정작 봐야할 것은 그 사람이 작은 쉬운 일들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작은 일들이기 때문이다.
너무 쉽다고 생각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은 겁을 먹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생각의 가벼움과 현실의 신중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는 작은 일의 순간순간을 어렵게 여겨 큰 일의 이루어짐을 쉽게 하라는 이야기로 읽힌다.
조선일보와 함께보는 장자연 사건
예전에 같이 영자신문 다니던 놈이 조선일보 다니는 어느 여기자를 만난 일이 있다.(왜 만났는지는 모름) 그 떄 그 여기자분은 "조선일보 기자면 뿔 달린 줄 알았죠? "라고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그냥 놀리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대학 신문들에게 비춰진 자신들의 모습을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겐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혹시 사회에 비춰진 자신들의 모습도 대충은 자각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순진한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 때 그 분은 그냥 놀리신게 분명한 듯 싶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좀 의식한다면 대체 이런 행보를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 중간발표 "조선일보 특정 임원 장자연 사건 무관…모든 사안 관련성 없어 무혐의"
- 박수찬 기자 sooc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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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선 닷컴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니 대문짝 하게 기사가 펼쳐져 있었다. 그동안 혐의속에 묶여있던 조선일보사로서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한겨레 독자나 한토마 들어오시는 분들은 곧이 곧대로 믿으시는 분은 별로 없으실 것이다. 세상 뭐 그렇지 힘있고 봐야지 ㅆㅂ 정도 내 뱉으실 듯 싶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일보 구독자도 수사결과를 별로 안 믿을거같다는 것이다,
"당시 성(性)상납 수사때 엄청난 외압 있었다"
- 한현우 기자 hw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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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4.16 02:39 / 수정 : 2009.04.16 09:4
조선일보 4월 16일
처음엔 한겨레가 쓴 기사인줄 알았다. 자기 언론사 대표가 혐의를 받고 있는 마당에 2002 년 성 상납 수사시 엄청난 외압이 있었다는 걸 보도한다는 건, 검찰의 안일한 수사태도를 압박하는 것일까? 아니면 저번에도 저렇게 대충끝났으니 이번에도 대충 끝날 것이다 라는 암시일까? 왠지 조선일보의 그동안의 행태로 봐선 두번째가 사리에 맞지만 만약 아니라면 이 달의 기자상은 한현우 기자님께!
그러나 문제는 의혹 덕지 덕지 붙은 중간 수사 발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분들은 며칠전 이종걸 이종희 의원을 고소했기 때문, 그렇게 폭넣게 이리저리 욕(그러니까 비판)을 하시는 분들이 그 폭만큼의 비판을 받아들으시지 못하는 것도 쪼잔해 보이지만 기막힌 것은 이분들이 하시는 소리들이다.
본사(本社), 이종걸·이정희 의원 등 고소
- 강훈 기자 nuku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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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사는 고소장에서 "본사 임원은 장씨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이종걸 의원은 지난 6일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장자연 리스트' 내용을 언급하면서 본사 특정 임원이 장씨 사건에 관련된 것처럼 이야기해 본사와 본사 특정 임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밝혔다.-본문 내용 중-
여기서 조선일보는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라고 했다.
여기서 조선일보는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라고 했다.
강희락 "장자연 리스트에 <조선>간부 들어있다"
"리스트 중 6명은 모처에서 조사…3명은 접촉 중"
기사입력 2009-04-13 오후 4:32:31
프레시안 4월 13일자
정말 진중권 교수 말마따라 장자연씨가 안티 조선 하려고 목숨을 끊으신 것은 아닐텐데, 리스트에 버젓히 올라가 있는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관련없다고 하시며 명예훼손을 청구하신다. 이분들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가해자의 행태로 봐서는 당연히 조용히 있으실줄 알았지만 이들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태도가 돌변하셨다.
김대중 고문은 칼럼에서 "조선일보의 입장에서 보면 경찰도, 어떤 의미에서는 정권도 이 '장자연 사건'의 진행을 즐기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당국의 무능과 무력, 또는 관음증(?)이 사태의 '주연' 같고, 일부 '안티 조선'의 조바심이 '조연'처럼 보였다." 라고 하셨다.
피해 망상도 이정도 되면 병일 듯한데 우스운 것은 관음증(?) 이란 대목이다. 조선일보는 얼마전에 연쇄 살인범 강호순 사건에서 화끈하게 사회적 관음증의 해소에 일조하지 않으셨나? 역시 내가 하면 스캔들이고 남이 하면 로맨스인 것일까? 같은 알 권리 라지만 내가 생각하는 알 권리와 조선일보가 생각하는 알 권리는 다른 듯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맞았다 달랐다 하는 것일테다. 명예훼손 운운하기 전에 자기들 행태나 다시 뒤돌아봐야하지않을까?
요즘 들어 아는게 병이라는 사실을 곱씹어보게 된다. 다들 "그럴껄" 하던 사실이 요즘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펼쳐진다.'경찰 청장은 룸 안가냐 다 저것도 큰 놈들오면 접대할걸 '다 로비질 하는거아냐 신인애들 팔고, 아마 그럴걸' '저거 앵커 가만 둘거같냐 자를걸' 순대국밥집에서의 아저씨들의 호언장담 이야기들 혹은 커피숍에서 여자애들 사이에 도는 출처가 꼭 있는 연예계 뒷이이야기들. 분명 다들 그럴걸 하고 공공연하게 아는 사실인데도 막상 사실을 알면 빈 속에 커피 넣는것 마냥 씁쓸하다.
개인적으로 조선일보 임원이 이 사건에 무관했으면 한다. 그래야 사실 뿔은 안 달렸구나 하고 믿을 테니까. 하지만 문건에 나온대로 정말로 그랬으면......................
죽는다 진짜.
예전 한토마에 올렸던 글인데 김대표란 놈이 잡혀와서 블로그에도 올려본다. 강희락 경찰청장처럼 기자들에게 모텔키 쥐어준 경험이 있으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돈으로 창녀촌 드나들어본 경험이 있으면 이해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자체가 좀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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