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일 목요일

불꽃남자 동욱이형을 기억하며


  동욱이형을 처음 봤던 때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 같은 소대도 아니었고, 워낙 찌글찌글(계급이 낮다는 표현)할 때라서 옆 소대 후임따위는 신경쓸 겨를도 없었으니까. 그때는 나 하나 건사하는데 정신이 없는 때였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면 먼저 필승하길래 아 내 후임이구나 하고 알아차린 정도, 같은 소대가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이 될 때까지 관심도 안 가졌었다.   
 하지만 복도에서 필승을 외치는 동욱이형은 묘한 분위기의 사람이었다. 모든 걸 받아줄 것 같은 푸근하고 선량한 눈, 약간 이국적인 얼굴 , 큰 키  목소리는 그다지 힘이 없었지만 부드러웠다. 왜 그런가 하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는데 고참들이 중대 본부 애들 이야기를 듣고 와서 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군대를 1학년 혹은 2학년 중간에 가지만 나는 학보사 활동때문에 23살에야 군대를 입대했다. 선임중에도 22살짜리 애들이 즐비했고 병장들이 나랑 나이가 비슷하곤 했다. 그런데 동욱이형은 나보다 두 살 많은 25살이었다. 왜 그렇게 나이가 많은 가 했더니 대학을 두번 들어가서 라고 했다.   
 동욱이형은 원래 서울대 공대에 다니고 있었다 . 그러다가 신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광주에 있는 신학대학으로 다시 입학하고 학년을 다닌 후 군대에 온 것이었다.  
 최전방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소위 SKY 대학에 나온 아이들은 일반 보병중대에 떨어지지 않고 본부중대 보직을 받는다. 우리 중대에서 가장 학벌이 좋았던 아이는 한양대 다니는 내 동기였다. 생각해보면 그 형이 공대를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이 빡센 보병중대에 올 일은 애시당초 없었다.     
 후에 내 머리가 만들어낸 이미지인지 모르지만 가물가물하게 훈련때 형의 모습을 본 적도 있는 것같다. 정말 가파른 대성산 길들, 철원의 살인적인 더위. 안경 속 땀방울과 함께 헉헉 거렸던 걸로 기억한다. 뭐 훈련 때 뿐일까. 같은 중대니 진지공사며 이런저런 때도 많이 스쳤을 것이다. 그러다가 좀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은 지뢰에 철심까는 작업때였다.  
 그때 무슨 협정이 바뀌었다고 지뢰도 지뢰탐지기에 걸리게 철심을 하나씩 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세계에서 지뢰때문에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상당하다고 한다. 탄약 반장이 데리고 다니는 작업은 정말 모하니면 도였는데 정말 땡보(무진장 편하다는 표현)일 때도 있는가 하면 무진장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때는 시간은 좀 걸렸지만 설렁 설렁하는 작업이라 동욱이형이랑 대화할 시간이 좀 있었다.                   
 사실 그때 거창한 이야기 없이 그냥 종교에 대해 이리저리 이야기했던 것같다. (왜 사람의 기억은 대부분이 뿌연 이미지일까 답답하다.) 아는 사람이 토마스 아퀴나스 밖에 없어서 그런 것도 공부하고 그러냐고 물으니 자기 학년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군대에서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났지만 , 동욱이형도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뭔가 신념에 꽉찬 사람. 그러면서 부드러운 사람이랄까?           
 그런 시작과 중간을 보내고 근무지 변경으로 소대가 갈린 뒤 한참 못 보다가 다시 만난 것은 GOP에서 였다. 1소대와 2소대는 바로 옆에 건물을 쓰는 까닭에 밥 먹을 때도 보고 얼굴 볼 일이 많았다.  동욱이형과의 시작과 중간은 가물가물하지만 끝은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후의 일때문에 형이 나에게 큰 의미가 되서인지는 모른다.
 GOP는  두 소대가 붙어있지만 쓰레기 처리하는 곳은 한 곳이다. 그런데 우리 소대에 비해서 2소대 아이들이 분리수거를 안한다고 불만이 컸다. 그것 때문에 이야기를 하러 갔었는데 그 때 동욱이형이 있었다. 형에게 소대 쓰레기좀 잘 처리하라고 볼멘소리를 했었는데 후임들 앞이라 좀 그랬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제부터 잘 하겠다고 했다. (당연한 것같지만 원래 후임들 많은 곳에서 대놓고 혼내면 안된다. 자존심을 뭉개는 행위다.) 형은 화를 내는 경우가 없었다. 그리고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깨끗이 인정했다. 그리고 그 후 형을 보지 못했다.
 군대에서 대부분 작업을 할 때 휴식시간이 되면 그냥 땅바닥에 주저앉곤 한다. 하지만 그 곳에 쥐똥이나 온갖 더러운 것이 많다. 특히 쥐똥같은 것이 있으면 유행성 출혈열이 걸릴 수 있는데 치사율이 40프로가 넘는다.
 상황실에서 (본부 소대라 GOP에서는 상황실에서 근무한다.) 휴가를 나간 동욱이형이 많이 아프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많이 아프다는게 얼마나 아픈지 몰랐다. 뚱보 중대장의 굳은 표정에서 좀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을 뿐. 하지만 이틀날 누구도 직접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조용히 형의 소식은 전 중대에 퍼졌다. 항상 야간근무 잡담으로 하루 하루를 때우던 그 때, 그 날은 아이들 다 말이 없었다. 나는 그냥 공책을 피고 기억안 날 말들을 끄적이며 아침을 맞았다.           
  가까이 생활하던 사람의 죽음을 별로 본 적이 없던 나는 혼란스러웠다, 신은 무엇일까? 신의 뜻은 무엇일까? 신은 동욱이형이 믿던 성경에서 처럼 도덕적인 존재일까? 과연  인간의 도덕과 신의 도덕은 상관이 있는 것일까? 동욱이형을 데려가는 것. 그것은 단지 불편부당한 것인가?   신은 정말 미울정도로 철저히 가치중립적인 것은 아닐까? 왜 대대 연대 사단에서 가장 순수한 영혼을 데려갈까? 그것이 신의 뜻일까?        
 형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결과로 봐야는 걸까? 과정으로 봐야는 걸까? 신부는 슬퍼하며 동욱이형은 천국에서 영생의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할까?   형이 서울대 공대생으로 남아있었다면 과연 죽었을까? 형은 행복했을까? 형이 사라진 지금 형의 행복을 말 할 수 있는 걸까? 불교신자이지만 좋은 업만 쌓아온 형이 윤회의 법칙속에 가야하는 이유는 또 뭘까.
 
 그 무엇도 답 할 수 없었다.

형의 죽음도 어느새 흩어져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갔고 얼마 후 나는 제대했다. 생각해보면 형도 군생활 2개월 정도 남은 무렵의 일이었다.
 이 밤 밑도 끝도 없이 형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때의 질문도 떠올랐다. 어차피 다 답은 못했지만...
갑자기 쥐가 생각나서 그런지 누구 생일날이어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흠.                                        
이 순간 말할 수 있는 건 형은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 그정도? 흠.
 
어! 쩄! 든!


   스물 여섯의 김동욱은 불꽃남자였다!
   형을 잊지 않겠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