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8일 화요일
이성으로 비관하고 정열로서 낙관하라.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에는 불가능한 꿈을 꾸자. - 체게바라-
나는 더욱더 영리해지고 싶다. 나의 뱀처럼 철저히 영리하고 싶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나는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 불가능을 바라는 나의 긍지가 항시 영리하게 실천되기를 나는 바란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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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현실과 꿈에 두가지에 대한 문구는 꽤 많다. 그만큼 현실의 냉혹함에 빠져 그냥그냥 하루를 지내면 삶이 비루해지고, 그렇다고 꿈의 달콤함에 빠져 현실을 등한시하면 그야말로 바보가 되고, 둘 다 별로 삶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놈의 중심 그놈의 중용이 대체 무엇일런지. 현실과 이상의 가운데 줄타기 . 난 떨어지지 않고 잘 타다 인생을 마칠 수 있을까?
모든 게임에서 이기는 룰이 있다. 룰을 자기가 만드는 것이다.
- 백남준-
잠시만요 남준이 형님. 그것 참 너무 어려운 일 아닌가요? 내가 자라오고 보아온 환경, 고정관념이 룰 아니었던가요? 점점 나이들어가면서 상상하는 룰의 범위도 좁아지는 것 아시나요? 혹시 모든 사람은 그 사람들 수만큼의 룰을 자기도 모르는채 만들고 살아가는 것 아닌가요? 자기가 룰을 만들면 좀 행복해지셨던 가요? 좀 대답해주시면 안되나요?
2009년 8월 14일 금요일
초식남?
한겨레 기사를 읽다보니 요즘 초식남이 뜨는가보다. 연애에 관심이 없고 자기 소비에 치중하고 생활을 가꾸어가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그 정의를 듣고서 이들을 어떻게 봐야할까 혼란스러워졌다. 내 주위에 철벽녀는 몇 봤어도 남자들은 다 사랑을 갈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더 이해하기 힘든지 모르겠다.
매트로 색슈얼이 뜰 때만해도 그들은 내게 문화적 현상으로서 이해되었다. 사회에서 마초들이 희화화되고(KKK단이 사라져가는건 그들을 억압해서가 아니라 영화등의 매체에서 그들이 비웃음을 사기때문이다.)화장품회사등에서 남성들을 마케팅 타겟으로 삼으면서 그들은 외모에 신경쓰는 새로운 소비주체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문화적인 흐름을 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래도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기위한 마음은 사라지지않았었다고 본다. 오히려 이성의 마음을 사로 잡기위해서 그런 트랜드에 편승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초식남들은 이성에 대한 욕망 감정을 소비 혹은 취미등에다가 투영하고 거기서 멈추는 경우인데, 뭐랄까. 이들은 성욕같은 근원적인 것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물질욕과 성취같은 피상적인 것에 적을 두는 사람들로 보인다 . 프로이트는 초자아가 이드를 너무 억압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했는데 그들을 억압하는 초자아는 대체 무엇일까? 그들은 자기 외모와 소비자체에 욕구가 고정되어 있는 것일까?
피카소가 6명의
여인과 평생 연애하면서 산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6명 맞나?)
그런 연애경험이 피카소에게 기발한
창조적 상상력을 주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조지부시같은 사람들은 그
정반대에 서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차라리
여자좋아한 클린턴시절 세상이 그나마 조용했던 반면
조지부시때는 미사일이 날아다녔다. 그는 성욕을 성취와 권력욕으로 바꾸어 살아가는 인물같은 느낌이 든다.(명박이형도. 명박이형은 사랑해봤을까?)
쇼펜하우어는 잠언록에서 건강과 같은 근원적인 것을 추구하라고 한다. 또 행복하기보다 고통을 피하라고도 한다. 초식남들은 어느 경우일까? 내게 그들은 고통을 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자기가 행복하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냐만은 )연애, 사랑이 전 우주적 가치도 아니고 사랑이 근원적인지는 확실하게 이야기 못하겠으나 온갖 문학작품들 , 영화들 , 노래들이 그것을 위해서 나오는 것을 보면 그들의 나르시시즘, 취미, 물질욕보다는 한참 위에 있는 것 아닐까? 주변에는 울고있는 늑대들만 있어서 그런지 이런 추세가 신기하게 느껴진다.
2009년 8월 13일 목요일
실버잡지가 없는 이유
그러나 노인잡지 ,실버잡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왜 일까 궁금했는데 어느 사이트에서 어렴풋한 답을 얻을 수가 있었다. 자식에게 모든것을 물려주고 노후를 자식에게 의존하는 한국에서 노인층의 시장경제란 만들어지기어려워서 그들에게 실 구매력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또다시 꺠달은 것은 경제든 문화든 정치든 뭐든 다 얽히고 섥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다. 그들의 구매가 적은 이유는 우리나라의 인습이란 사회문화적 요인에 기인한다. 요즘들어 아기용품 시장이 크고 있는데 이 이유도 따지고 보면 자기는 안입어도 자식에게는 좋은 거 입히려는 관습으로 인한 것일테다. 그런가 하면 비싼 요트시장도 있는데 점점 양극화로 흘러가게 하는 정치시스템이 이런 수요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문화적,정치적,경제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 새로운 아이템으로 시장에 승부할 수 있을 것같다. 예전 같이 일하던 형의 고모란 분이 상당히 사업을 크게 한 사람이었는데, 그 분이 중국을 다녀와서 그형에게 한 말이 중국엔 배달문화가 없다고 거기서 배달 사업을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그 분 명언 : 돈은 은행에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 지금 중국엔 BBQ가 진출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물론 나는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하지만 내가 나중에 PD나 혹은 기자가 되어 무언가를 기획한다는 것도 결국은 시청자, 독자라는 수요를 이끌어내야한다. 그것은 사업과 마찬가지로 너무 앞서가도 안되고 너무 뒤쳐져도 안된다. 그것은 도태를 불러올 것이다.
불안의 시대, 그리고 가장 불안한 떄를 걷는 지금 나에게는 새로운 계획과 기획이 필요하다. 좋은 계획과 기획을 하려면 지금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를 잘 읽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 불안의 지금이 그만큼 스스로를 민감하게 해 새로운 것을 보는 눈을 길러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