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과 인간의 탐욕
사람한테 사람을 갈아서 먹인다고 하면 어떨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름끼친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자체를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런데 동물들의 경우는 어떨까? 소한테 소를 갈아서 먹이고, 돼지한테 돼지를 갈아서 먹인다? 이것은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미국 등의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생태철학자 아르네 네스는 동물도 동물답게 살 권리가 있다고 했다. 이는 무리한 당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소비재로서 동물들은 그런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초식동물인 소는 자기 종족을 갈아 만든 사료를 먹는다.
이번 구제역 파동은 철저히 산업적으로 시작해서 철저히 산업적으로 처리된 사건이다.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비위생적이고 협소한 공간에 가축들을 몰아놓고 키운 까닭에 면역력이 약한 동물들이 병에 걸리고 마는 것이다. 실제로 구제역 발생국가지도를 보면 청정지역인 뉴질랜드를 비롯하여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도 대부분 구제역이 발생한 경우가 없다.
‘경제적’이지만 취약한 환경에서 자란 소들이 죽으면 그 대처는 더욱 경제적이다. 다른 농가에 퍼지지 않도록 바로 도살처분 하는 것이다. 사실 구제역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치사율이 겨우 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전염병이다. 예전에도 구제역은 존재했지만 구제역이 걸리면 소들을 따뜻하게 하고 부드러운 건초를 먹이면 자연적으로 나았다고 한다.
하지만 축산은 현재 산업이다. 소비자는 구제역이 걸린 국가의 고기를 소비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한 구제역이 걸리면 우유 생산이 15~20프로 감소한다고 한다. 때문에 소를 가차 없이 도살 처분하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경미한 감기에 걸렸는데 경제적으로 쓸모없어진다고 땅에다 묻어버리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구제역청정국이라는 ‘브랜드’를 가지기 위해서 몇 십만 마리의 소들을 죽이고 있다. 지금 당국은 구제역 발생 반경 3Km 이내의 돼지, 소를 살 처분하고 있는데 이로 인한 농촌의 신음은 깊어지고 있다. 소만 잡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잡고 있는 판국이다.
‘길을 잘 못 든 사람이 서두른다.’는 말이 있다. 근본적인 길을 못보고 탐욕으로 인한 곁길을 가는 지금 동물들은 재빠르게 매몰되고 있다. 사람의 욕심으로 시작된 이 사태의 끝은 어디일까? 광우병에서 보듯이 결국 모든 재난은 사람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다시 기본으로 가야한다. 결국 잡아먹기 위해 키우는 동물이지만 동물들에게도 최소한으로 지켜야할 ‘도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도리가 지켜질 때 지금 벌어지는 무차별한 매몰 속 농민들의 눈물도 사라질 것이며 그로인한 토지오염도 사라질 것이다.
참조:
피로 얼룩진 구제역 청정국, 한겨레
백승종의 역설 , 한겨레 사설
구제역 전국으로 번지나, 한겨레
농림수산식품부 구제역 문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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