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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3일 토요일

인문학의 가능성과 미래

요즘 CEO들 사이에서 인문학 강좌가 인기라고 한다. 국내에 내로라하는 CEO들이 삼성경제연구소 SERI 문학 강좌에 참가하고 있다. 서점가에서는 ‘인문에서 경영을 읽다.’ ‘시읽는 CEO' 등 인문과 경영을 접목한 책이 인기를 얻고 있는 중이다. 몇 년 전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인문은 시대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환경문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제인들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는 이상 어떤 것도 행하는 법이 없다. 유행처럼 번져가는 인문학 열풍은 인문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보여주고 있다. 대체 어떤 변화가 오기에 리더들 사이에 인문학이 떠오르는 것일까?

 박경철 의사는 경원대 지성학 강의에서 지금의 시대를 추격성장에서 선도성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정의하였다. 누군가 앞질러 놓으면 그것을 따라가기 위해 온 힘을 쏟는 것이 추격성장이라 한다면, 선도성장은 맨 앞에서 방향을 설정하는 성장이다. 우리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을 따라가기 바빴던 시기에서 앞으로 나가 방향을 정해야하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이 선도성장의 시기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창의적인 것들을 만들고 틀을 짤 수 있는 상상력이다. 선도성장의 시기에는 누군가를 따라 해서는 앞서갈 수 없다. 이 시대는 디지털 컨버젼스를 이해하고 거대한 상상력을 통해 세상을 짜나가야 성장할 수 있고 앞서 나갈 수 있다.

 아울러 선도성장의 시대에는 이전 시기와는 다른 리더십이 요구된다. 추격성장 시대에 필요했던 리더십은 한 지도자의 의지를 보이면 개인이 우르르 따라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도성장의 시기에 필요한 것은 개개인을 다 설득하고 개성과 역량을 발휘하게 하는 리더십이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인문학은 그 필요성을 더하고 있다. 개발도상국 수준의 경제에서 위기를 맞았던 인문학은 새로운 시대에서 다시 부흥하는 것이다. 시대를 읽어야하기에 역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상상하고 남을 이해해야하기에 문학이 필요하게 된다. 새로운 시대에 인문학은 선택의 학문에서 필요의 학문으로 거듭나고 있다.

  미래에 인문학은 더욱더 맹위를 떨칠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가 배출하는 혼란은 끊임없는 도덕을 요구할 것이다. 새로운 사상이 사람들을 움직일 것이며, 점점 파편화되는 개개인중 상당수는 문학에서 안식을 찾을 것이다. 익히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문제들 속에 철학은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 줄 것이다. 학문 간의 융합과 인간중심적 변화는 모든 학문에 인문학의 필요성을 더해줄 것이다.

 인문은 사람에 대한 학문이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이해가 사라질 때 경제적 동물만이 남고 삶은 팍팍해진다. 미래의 사회는 밝고 풍요로울까? 그에 대한 답은 결국 인문의 성패에 달려있을 것이다.


참고부분

<미래학이란 무엇인가> 하인호, 일송북 p149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 인문대 졸업생의 진로가 막혀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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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그를 쓰며 인문학을 치니 인문학의 위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네요. 제가 보기에는 인문학이 위기인 것이 아니라 인문대가 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가오는 제2의 르네상스를 인문대학에서 준비할 수 있을런지.

미래학이란 무엇일까?

-미래학에 대한 정의……라기보단 생각-

 마광수는 광마잡담에서 미래에는 자유의지가 없는 성애로봇이 나오고 쾌락지상주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했다. 마르크스는 미래의 노동은 놀이가 될 것이라고 했으며, 박경철은 추격성장의 시대가 가고 선도 성장의 시대가 올 것이라 했다. 공병호씨는 십년 후의 한국에 대해 책을 썼으며, 가십TV에서는 올 여름 패션트렌드에 대해 방송을 하고 있다. 

 나는 미래학이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다 소위 미래학자란 사람들이 누구인가 떠올려보았다.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라고는 피터 드러커 정도였는데 그도 직업은 컨설턴트였던 사람이다. 위의 사람들을 보며 나는 미래학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렸는데, 미래학이란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자신의 지식을 토대로 그럴듯하게 예측을 설명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래학이란 모든 전문영역이 마지막으로 도달해야할 종착역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가하면 정의가 아닌 특성적인 면으로 접근할 때 미래학이란 누군가의 계획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미래학을 계획과 같은 것으로 볼 때 우리는 미래학의 특성에 대해 몇 가지 알아볼 수 있다.

 첫째로 예측 속에 있는 당위와 현실과의 괴리이다. 가령 나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월요일 아침이 되면 일주일 계획을 세우곤 한다. 숙제들이 있으면 며칠까지 숙제들 기한을 세워놓기도 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 시간을 비워놓기도 한다. 내 시간 리듬에 맞추어 볼 때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은 생각하지 않고 이것저것 배열해 놓는다. 여기서 나는 내 스스로에 대한 전문가이다.

 그런데 막상 맞닥뜨린 현실은 계획대로 흘러가주지 않는다. 책을 보다 지겨워 게임에 몇 시간 빠지는가 하면 친한 친구가 술 먹자고 부르기도 한다. 일주일 안 본 여자 친구의 기분은 예상 밖이고 숙제의 진척도 예상 밖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당위에도 불과하고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주지 않는다.

 둘째는 필연적인 예측 불가능성이다. 나비효과란 단어로 널리 알려진 카오스이론은 ‘초기조건의 민감한 의존성에 따른 미래결과의 예측 불가능성’을 의미한다. 나는 내 여자 친구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사실 만난 것도 설명하려면 끝이 없다. 그 인과의 초기조건은 내 이성적 능력의 밖이다. 

 그렇다면 왜 어차피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배우겠답시고 이 수업을 듣고 있을까. 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불안을 꼽고 싶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불안의 ‘신호적 기능’을 중요시하며 그것을 생물학적 적응 과정으로 본다. 그런 관점으로 볼 때 불안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직 완전히 인식되지 않는 요인들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커대한 흐름에 대한 불안을 떨쳐보고자 미래학이란 정보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안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미래는 알 수 있을까? 당장 4개월 후에 나는 이 수업의 A학점을 맞아서 나갈까? 모르겠다. 그렇다면 누가 와서 영상으로 다 보여준다고 하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진짜 권태로울 듯싶다. 

  불안 속에서 나는 이 수업을 들어나간다. 그리고 권태보다는 불안이 나은 듯하다. 불안 덕분에 미래학이란 학문을 익히고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결과가 불안하지만 과정을 즐기는 것 그것이 지금을 살아가고 미래를 살아내는 자세가 아닐까?



- 3 월 31 일 미래학 수업 레포트.